전체 교원 20%가 연·병가 사용
교사 70% 결근한 학교도 있어
서이초 교사 49재
나흘새 극단선택 3명 비보에 국회 앞에서는 교사들의 대규모 추모집회가 열렸다.
교육부는 집단 연가·병가를 낸 교원들을 징계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추모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49일을 맞아 이날 오후 국회 앞은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지난 7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대 교사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평일 집회임에도 이날 국회 앞에는 주최측 추산 5만명이 모였다.
당국 경고에도 못 막은 교권 목소리
앞서 교육부가 이날 집회 참가를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적지 않은 인파가 몰린 것이다.
참가자들은 국회를 향해 마련된 연단 앞에 차례로 앉아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집회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초등 교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보육교사 등 교육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를 겪은 교사들이 목소리를 보탰다.
이어 "고인에 대한 확실한 추모는 진상규명"이라며 "진실을 밝혀야 선생님을 편히 보낼 수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다른 초등교사는 "6년 전 학부모가 반에 난입해 아이들을 보내고 '미친X이 담임이라 애들이 이 모양이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라며 "교내 교권보호위원회는 쌍방 화해를 권고했다"고 발언했다.
이어 "재심을 청구했지만 도교육청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제기를 교권 침해로 볼 수 없다며 각하 처분을 내렸다"며 "전 알고 있었다.
동료 교사도, 관리자도, 교육청도 누구도 우릴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라고 호소했다.
'공교육 멈춤'
교사들은 사망한 교사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 정부의 대응 자체를 문제삼았다.
검은 복면을 쓴 사회자도 이날 연단에 올라 전날 호소문을 발표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향해 "교권 보호 대화에 뒤늦게 나타나 학교 지켜달라는 호소문 읽는 순간 그 의도가 읽혀 낯부끄럽기 짝이 없었다"라며 이 부총리를 처벌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도 교육부가 내놓은 교권 보호 대책에 대해 비판을 표했다.
특히 '학생생활기록부 기재'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초등 교사(38·여)는 "교육부가 파면, 해임하겠다고 하니 학교 관리자들도 자신의 안위가 걸려있어 쉽게 휴업 결정을 하지 못했다"며 개인 연차를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생부 기재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학부모와 학생이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경우 교사도 맞받아칠 수 있는 조치,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연대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또 다른 초등 교사(44·여)도 "현재 아동복지법이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을 살리지도 못하면서 교사들에게 맡기고 있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금쪽이'라는 아이를 통제를 못하는데 교사들이 소극적으로 대하면 방임이라고 비판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조항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교사에 대해 엄격하게 직위해제 판결을 내리는 법 조항에 대해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응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30·여)는 "오후 조퇴를 하고 집회에 참석했다"며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보고 학부모의 민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라며 "교육부가 병가나 연가를 쓰면 징계를 주겠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교사 이외에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표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전국 각지에서 10만여명
49재인 이날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오후 강원·경북·충청·전북·대전·광주·전남·대구·울산·경남·부산·제주 등 전국 13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집회가 개최됐다.
이번 집회를 주최하는 ‘한마음으로함께하는모두’라는 이름의 교사 모임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진행된 국회 앞 집회에 교사 3만여 명이, 같은 시간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별 집회에 7만여 명이 모였다.
다만 4일 집회에 반대 의사를 표한 교사들도 많아 연차 또는 병가를 내고 개인적인 추모를 하는 교사들도 상당수였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기준 교육부가 추산한 임시휴업 실시 초등학교는 전국 38개교였다.
이는 전체 초등학교 6286개교 중 0.6%에 해당한다.
서울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일을 기리는 ‘공교육 멈춤(정상화)의 날’인 4일 교사 10만 명이 학교 대신 거리로 쏟아졌다.
우회 파업
교육 당국이 교사들의 집단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전체 교원(50만 명) 중 5분의 1이 전국 각지에서 교권 회복을 외쳤다.
징계를 각오한 상당수 교사들이 병가·연가를 내고 이번 집회에 힘을 실어줬지만 많은 교사들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수업 파행이 빚어졌다.
교육 당국의 엄벌 방침 고수에 교사 징계 등 적잖은 후폭풍도 우려된다.
과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연가 투쟁을 벌인 적은 있지만 특정 노조나 단체 주도 없이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우회 파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교사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이날 교장 출신의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숨진 것을 포함해 최근 잇따라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집회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벌 방침
교사들의 교권 회복 외침에 교육 당국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해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육 전반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추도사에서 “학교와 선생님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었다. 소중한 교훈을 고인을 떠나보낸 뒤에야 깨우쳤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교원 단체도 잇따라 애도 메시지를 발표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이날 “지난 주말 현장 교사들이 외친 목소리를 깊이 새겨 교권 확립과 교육 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교육 당국이 엄벌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집회 이후 적잖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늘은 추모가 이뤄지는 날로 (징계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교사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고 주말(집회) 참가자 수가 늘고 있지만 교육부 원칙이 바뀌었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교권 회복 후속 조치로 교직원들에게 전화를 걸면 배려를 강조하고 통화 녹음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내용의 통화연결음을 마련해 전국 학교에 배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