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명 선처 탄원 이유
60대는 ‘형제복지원 피해 장애인
흉기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한 남성을 선처해달라며 1천 명이 넘는 시민이 탄원서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1. 대학로 흉기 사건
지난 17일 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60대 남성 A 씨가 흉기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남성,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정신연령이 3~7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장애 특성상 소리에 민감한 그가 오토바이 굉음에 놀라 집에 있던 흉기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찰은 특수협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요.
지난 19일 남성이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남성을 아는 이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흉기를 들고 다녀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 특성과 생애 과정을 고려하면 구속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성이 형제복지원 피해 트라우마가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부산시, 더 나아가 정권에 의해 일어난 인권유린, 국가폭력, 학살사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학살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1987년 말까지 수용자 학대가 자행되었다.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모인 탄원서는 총 1천15건에 달했는데요.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도망의 염려와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을 고려했다'며 남성의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2. 탄원서로 목소리를 낸 시민들
그런데 영장 심사 과정에서, A 씨를 선처해달라면서 '탄원서'로 목소리를 낸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집' 없이 평생 살았다
A 씨는 나이가 60대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태어난 뒤 상당 기간, 출생 등록이 안 된 채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1983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 출생 사실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이때 1962년생으로 등록되긴 했지만, 그가 실제로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평생을 고아로 살면서 보육시설과 부랑인 시설 여러 곳을 전전했던 A 씨,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밝힌 곳입니다.
A 씨도 이곳에서 강제노동과 폭행 등 피해를 당하다가 겨우 탈출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이러한 피해 사실을 진실화해위에 진술했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A 씨는 지난해 9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해 살면서 처음으로 '시설'이 아닌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11개월 동안 홀로서기를 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왔는데,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A 씨 보호해온 시민단체 "위협적 행동 맞지만….
" A 씨의 이 같은 삶을 알고 보호해온 건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입니다.
이 단체는 2002년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A 씨를 발견했고, 20년 넘게 A 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 씨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에 '2급 지적장애'를 판정받은 중증 발달장애인입니다.
그의 지능지수는 35~49 정도밖에 되지 않고, 정신연령도 3~7세 수준이라고 합니다. 홈
리스행동에 따르면 A 씨는 여전히 글을 읽고 쓸 줄 모릅니다.
자기 생각이나 요구사항을 표현하기 어렵고, '소리 지르기'로 의사를 표현해왔다고 합니다.
A 씨 주거지 인근 주민들은 평소에도 A 씨가 소리를 질러왔다면서 공포심을 드러냈는데,
이게 A 씨에겐 '의사 표현'이고 누군가를 해치려는 건 아니라는 게 단체 측 설명입니다.
"뇌경색과 급성신부전 등 질환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타인을 해치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1000명 넘게 탄원
"과잉행동 치료, 주민 소통 등 계획" 장애가 있더라도,
불우한 삶을 살아왔더라도,
흉기를 소지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홈리스행동이 이런 탄원서를 작성한 취지는 A 씨의 행동이 위험하고 엄중하더라도,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와 상황도 고려해달라는 것입니다.
탄원에는 1천 명 넘는 시민과 시민 단체가 동참했지만,
범죄의 중대성과 도망 염려 등을 이유로 서울중앙지법은 구속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어제(20일) 경찰서에 수감 된 A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A 씨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1차원적 요구만을 말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단체 측은 설명했습니다.
홈리스행동은 이번 사건처럼, 불편한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A 씨의 '과잉행동'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전문의와 적극적인 치료를 할 계획입니다.
또 A 씨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임대주택의 이웃 주민들과도 만나서, A 씨의 건강 상태와 상황을 알리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단체로 연락하라'고 알릴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